최종식 개인展 Choi, Jong-sik Solo Exhibition 2021.10.1~12.31
[행사 안내]
작가 다섯 분과 함께 만나 이야기를 직접 나누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행사를 합니다.
제목: 관념을 이해하고 작품과 관계 맺기
인원: 30명
일시: 12월 2일 저녁 7시 (수요일)
제공: 비건 와인, 비건 와인 안주
금액: 1인 4만 원 (네이버 예약 필수)
작가: 김형학, 권세혁, 오영, 이근화, 이영균
진행: 김홍록 (마히나 비건 테이블 대표_현대 미술 아티스트_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행사 구성은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관념을 이해하고 작품과 관계 맺기
글: 김홍록
당신은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는가?
아래 쉬운 순으로 나열된 취미들 사이에 『미술작품 관람하기』를 어느 위치에 배치할 수 있을까?
재생 음악 듣기 – 책 읽기 – 산책하기 – 요리하기 – 자전거 타기 – 높은 산 정상까지 오르기
미술 작품 관람하기는 자전거 타기보다 어렵고 높은 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보다도 어렵다. 만약 왜 어려운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 『미술 작품 관람하기』와 『화면으로 작품 사진 보기』를 혼동하는 것일 수 있다. ‘화면으로 작품 사진 보기’는 ‘재생 음악 듣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미술 작품 관람하기와 재생 음악 듣기는 예술 영역에 속한 비슷한 무언가라고 생각하고 쉽게 혼동할 수 있다. 둘의 차이를 이해하고 접근을 달리하면 『미술 작품 관람하기』도 재생 음악 듣기처럼 쉽게 관계할 수 있다.
– 재생할 수 있는 음악
–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작품 사진
– 연주자의 연주
– 미술 작품
이렇게 네 가지 활동이 있다.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눈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재생 음악과 작품 사진은 모두 데이터에 기반한다. 그 데이터는 반복 확장이 가능하며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고 분석할 수도 있고 펼쳐볼 수도 있다. 마치 샐러드처럼 각각의 재료를 확인할 수 있어 재조합도 가능하다.
반면 음악 연주와 미술 작품은 모두 물성에 기반하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연주자는 완벽히 같은 연주를 다시 할 수 없으며, 미술 작가는 완벽히 동일한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없다.
연주자의 연주가 공연 당시 컨디션, 공연장, 관객 등 여러 가지 요소에 영향을 받은 즉흥적인 화학 작용 결과이듯, 미술 작품 역시 작가가 모든 붓 터치의 물감의 양과 섞임, 번짐, 경화 정도 등 어떠한 것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기에 그 둘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미술 작품과 연주 모두 매우 유기적이고 결과 예측이 어려우며 스무디처럼 각각의 재료를 원상태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전 처음 보는 샐러드와 스무디가 있다고 가정하자. 샐러드는 먹어보기 전에 각각의 재료를 살펴 어떤 맛일지 짐작할 수 있지만, 스무디는 색상 정보만 있을 뿐 직접 맛보기 전까지는 파인애플이 많은지 망고가 많은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데이터 음악과 작품 사진을 보는 것은 쉽지만, 실황 연주나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정보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미술작품 관람하기가 본래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천천히 다가가는 노력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내 내면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샐러드도 맛있고 스무디도 맛있다는 것이다. 너무 중요한 사실이다. 다만 스무디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그 속을 모르겠다고 피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 찍어서 맛이라도 보기를 권한다.
벽에 걸려있는 미술 작품을 다시 보자. 앞서 말했듯 미술 작품은 수많은 우연들이 축적된 작가의 작품 만들기 투쟁의 결과이다. 작가의 깊은 생각도 엿볼 수 있다. 작품과 마주하는 일은 연주자의 연주를 실황으로 보는 것과 같이 설레고, 두근거리는 일이다.
미술 작품도 연주자의 연주처럼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관객이 그 마음을 몰라줄 뿐 벽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은 작가에 의해 작용이 끝난 결과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림을 마주하는 관객의 심리와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변하고 반응한다. 이때 작품과 관객의 관계가 형성된다.
당신은 가게에 도착했다. 그 가게에서는 처음 보는 새로운 종류의 스무디를 팔고 있는데, 메뉴판을 보니 5개의 스무디가 준비되어 있다. 이름과 재료, 만든 이가 적혀있다. 하지만 이 가게의 스무디는 특별하게도 살 수는 있지만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세상에 먹을 수 없는 스무디 라니… 도대체 만든 이 들은 무슨 생각일까? 과연 먹고사는 문제 보다 더 중요한 것 있을까? 이 스무디를 사면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당신은 이들의 생각을 따라가 보기로 결심한다.
첫 번째 스무디
제목: 달 4
크기: 120x120cm
재료: 광목 위에 아크릴
만든 이: 권세혁
만든 연도: 2020
약력: 홍익대학교 동양화 석사
함께 제목을 살펴보자, ‘달’과 ‘4’. 4개의 달 일수도, 4번째 달 일수도, 달 그리고 넷 일수도, 4번째 그린 달 일 수도 있다. 무엇이 정답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작품을 보니 모양으로 보나, 제목으로 보나 영락없는 달이다. 무엇이든 그것의 이름이 가장 중요하다. 이미지는 이름을 표현하는 가이드와 같다.
약력을 보니 권세혁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하였다. 작가가 사용한 아크릴물감은 서양화 재료 중 하나인데 동양화 작가가 서양식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작업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동양화는 스며드는 미술이다. 종이에 먹이 스며들며 번진다. 반면 서양화는 캔버스에 물감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그의 달 작품을 보면, 물감이 번진 모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들어 번진 것이 아닌 캔버스 위에서 물이 물감의 안료를 퍼트려 주는 방식으로 쌓아 올린 서양적 요소이다.
스며듦과 번짐 모두 우연의 효과를 기대한다고 볼 수 있지만 동양화는 그 우연이 즉각적이고 결정적이라면, 서양화는 보다 기회가 많고 여지가 많다. 동양화를 전공한 권세혁 작가의 번짐 표현은 동양적 요소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지만 기회를 통해 만들어 나가는 작업 방식은 지극히 서양적이다.
권세혁 작가의 달 작품 이전의 전시를 본 적이 있다. 당시 작가는 산을 그렸다. 보면 척하고 알 수 있는 백두산 한라산이 아닌, 언젠가 본 적 있는 산이었다. 그 산은 화폭에서 매우 뛰어난 조형미(인간의 손길로 만든 아름다움)를 갖추고 있었으며 작품으로써 흠잡을 곳이 없었다. 마치 그림을 위한 산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산을 그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산을 답사하고, 산 사진을 찍고, 산을 그린 그림들을 찾아보고, 산에 대한 사전적 지식을 탐구할 것이다.
이런 접근은 실존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사진 또는 영상이 그 역할을 더 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산에서 직접 보고 몸으로 느낀 것 들이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 머릿속에는 그 기억과 느낌이 있는데 말로도 설명이 어렵다.
그런 표현하기 힘든 정보를 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관념이다.
권세혁 작가는 그런 관념을 화폭에 담는 노력을 한다. 사진 등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이미 많이 보고 느꼈던 산의 관념을 그림으로 기록하여 그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혹시 미래에 모든 산이 사라진다면, 산 작품은 미래인들과 공감대가 형성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작가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많은 산을 보았고, 느꼈고 알고 있다. 그 산을 작가 작품으로 접하면서 우리의 관념이 더욱 선명해지고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관념을 공유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마음의 안식도 찾을 수 있다.
권세혁 작가의 『달 4』 작품을 보고 당신은 다음 중 어떤 생각을 하였는가?
– 달이다.
– 어떤 행성이다.
서울에서 산을 그리던 권세혁 작가는 돌연 작업실을 제주도로 옮겼다. 제주도는 관념의 산을 이루기에 좋은 장소일 것 같았는데 제주도에서 달에게 매료되었던 것일까? 작가는 몇 년의 시간이 지나 달 작품을 선보였다. 영락없는 달인데 다가가 살펴보면 관념의 달이다.
얼핏 보고 달이네, 예쁘네, 하고 돌아설 수 있겠지만 자세히 살펴보자.
둥글게 생겼고, 분명 분화구도 있고, 색상도 비슷하다. 달은 달인데, 가만 생각해보면 실제 달의 모습과 매우 다르다. 얼마나 다른지 달 사진을 핸드폰으로 검색해보자.
달의 모습을 아주 상세하게 찍은 사진과, 권세혁 작가의 작품이 나란히 있었다고 상상한다면 오히려 달 사진을 어떤 행성으로 인식했을 수 있다. 처음 작가 작품을 보았을 때 ‘달!’이라고 생각했다면 작가가 그려낸 관념의 달이 실제 달 사진보다 당신의 관념 속의 달에 더 가까운 것이다. 만약 처음 보자마자 ‘작가가 어떤 행성을 그렸나 보군’이라고 생각했다면, 매우 부럽게도 당신은 달에 다녀온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간혹 해외 작가의 작품을 보면 무언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는 서로의 문화와 삶의 배경이 달라 관념이 많이 다르고, 이로 인해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들과 오랜 시간 함께 살아보거나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아 그래서 미술 작품 관람이 어려웠구나!’
반면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한국 작가는 당신과 관념이 통하기 쉬워 작품과의 관계 형성이 쉽다. 해외 작가의 작품과 관계하려면 그 배경에 대한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 심지어 설명을 읽어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관계 형성이 되지 않는다.
권세혁 작가 이외 김형학, 오영, 이근화, 이영균 작가의 스무디도 준비되어 있다. 당신은 충분히 작가의 관념을 이해하고 작품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